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이요카이 전격대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[[파일:Daiyokai_1.png]] >“자세한 성능 사양은 알 수 없지만 전장에서는 다이요카이가 막을 수 없는 힘을 뽐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. 마치 자연재해 같은 위력이군요. 일본인들의 용맹과 의지 그 자체가 현현한 것 같습니다.” > >-궐기 초기, 사봇! 채널에서 발간한 다이요카이 전격대에 대한 논평. 일본이 핵심 공업 지역인 쿠라이모리를 잃은 뒤 JSA의 군사 기술 개발 계획, 텐 노 부시(天の武士/하늘의 무사) 프로그램은 큰 차질을 빚었다. 일본인들의 최우선 목표는 프로그램 소속 연구원들과 연구 샘플을 대피시키는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모든 걸 구할 수는 없었다. 텐 노 부시 프로젝트들 대부분은 데이터와 최첨단 연구시설이 유실되며 무기한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. 이런 상황에 영향을 받은 프로젝트 중 하나가 고성능 초중 동력 장갑복을 개발하고자 했던 [[7인의 사무라이|키쿠치요]][[사무라이 7/등장인물#s-1.3|(菊千代)]] 프로그램이었는데, 프로그램 개발진은 쿠라이모리에서 탈출하는 동안 시제품 장갑복을 남겨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. JSA는 시제품을 잃었음에도 키쿠치요 프로그램의 완성을 최우선 과제로 지정했다. 동요하는 작전 상황에 대응하고,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하며, 민간인들에게 독립 일본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. 기합을 넣어 다시 시작된 키쿠치요 프로그램은 회수한 데이터를 사용해 새로운 시제품을 제작했다. 첨단 기술의 비중은 줄어들었으나 신생국의 위축된 생산력이 감당하기에는 더 적합한 장비였다. 다시 제작한 장갑복의 성능은 원형의 수치를 따라잡지 못했지만, 그 결과물은 기록적인 시간 만에 운용 가능한 시제품을 제작한 프로젝트 개발자들의 눈에도 매우 인상적인 수준이었다. 당시는 유징 제국에 대항한 독립 전쟁이 갈수록 격화되던 시점이었고 시제품들은 곧바로 실제 전장에서 테스트를 수행하게 됐다. 그 결과, 양산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 장갑복은 휴먼 엣지의 쌍성 카스토르와 플룩스의 고리에 있던 루츠보 궤도 공장을 방어하며 두각을 나타냈다. 공장 복도는 오요로이가 지나가기에 너무 좁았지만 키쿠치요 시제품으로 무장한 병력들이 그 위맹한 모습과 내구력, 그리고 파괴적인 잠재력을 선보일 무대로서는 완벽했다. 루츠보 방어전에 참여했던 병사들의 이야기가 퍼지며 이 장갑복을 둘러싼 전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, 곧 다이요카이(大妖怪, 대요괴)라는 콜사인이 따라붙었다. 꽤 과시적이지만, 이 강철 사무라이가 남긴 파괴와 승리의 행보에 걸맞은 이름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